2017년 1월 19일 목요일

아름다운 자태의 노송

강물처럼 바람처럼::아름다운 자태의 노송

노송들의 아름다은 자태입니다.
자장율사가 통도사를 창건하기 위해 기도하던 곳에 있는 도량입니다.
이도량에서 마주보는 산이 영축산입니다.

영축산을 배경으로 우뚝 솟아있는 천년노송들이 유독 자태가 아름답습니다.
자세히 보면 아무렇게나 자라나서 비뚤어지기도 하고 아무 방향이나 비스듬이 서있지만 ,
전체적으로 볼때 이 나무들은 잘 다듬어 진것같은 배열과 형상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노송



2017년 1월 18일 수요일

아날로그적인 감성은 지키자

아날로그적 감성은 지키자

디지털은 기본적으로 Yes or No 를 기반으로 형성된 논리회로의 지대한 산물입니다. 
현대과학이 눈부시게 발전하는데 공헌을 한 2진수의 마법은 놀라운 것이지만 절대로 만능은 아닙니다. 

어찌 보면 불교의 어느 고승이 내뱉는 화두처럼 들리는, 긴것도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니거나 또는 기기도 하고 아니기 도 하며 적당한 정도로 대충 비슷한 경지를 나타내는 아날로그의 위대함을 우리는 간과하는 지경에 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아날로그 진공관 앰프

아날로그 진공관 앰프

내가 공부할 때는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첫 시기었음으로 당시에는 디지털 개념 그 자체가 경이적인 이론이었고 반도체 단위소자 한개인 콩알만한 트랜지스터 한개의 능력에 매료되어 덩치크고 열나고 전기 많이 먹는 진공관(전자관:Vacuum-Tube)을 버리고 모든 전자회로의 구동을 반도체로 재구성하든 시기었습니다. 

당시엔 전자화로만 국한해서 D/A 비를 본다면 아나로그로 구성된 전자관회로가 99%이상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으며 신기술을 다루는 책에서 디지털의시대의 기본소자인 반도체 구동원리가 하나씩 다루는 정도였으며 당시의 방송국에도 메인출력 파이널관은 좀 과장되게 말하면 어린아이만큼 큰 수냉식 진공관이 전국의 하늘에 전파를 쏘아보내던 때이었지요. 

불과 50~60년전에 시작된 반도체의 활약은 처음에 트랜지스터 소자 3개로 만든 상업용 3석라디오로 출발해서 6석-8석라디오 하며 초기 반도체 상업제품을 만들다가 이제는 콩알만한 단위소자가 눈에도 안보일만큼 단위소자가 작아젔습니다. 

이제는 그 작은 소자들이 집적되어 한개의 칩 속에 반도체 단위소자 수백-수천 개 아니 수백만개까지 내장되게 되었고 화로동선은 보이지도 않는 미크론단위로 가늘어진 그런 칩을 여러개 사용해서 만든 제품들이 우리의 모든 생활용품에 장치되며 어린애 장난감에도 콘트롤러로 사용되는 놀라운 발전을 한 것입니다. 

피도 눈물도 없는 디지털의 냉엄한 판단을 종종 말하곤 합니다. 
반드시 필요한 논리인 것은 사실이며 그 정확한 판단에 의해서 처리되는 이 디지털 세상에서, 

이제는 숲속에서 바람이 불고 계곡에서 물이 흐르는 불규칙들이 모여서 하나의 오케스트라가 만들어지며 그것의 거대한 규칙을 이제사 이해하게 되었고 그것을 갈망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자연과 더불어 길을 걷고 산을 오르면서 노래 부르며 그옛날 청춘을 바처 공부했던 그 디지털 보다 아나로그를 다시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철저한 규칙들이 모여서 만든 거대한 불합리보다 철저한 불규칙들이 모여서 만든 거대한 법칙이 더 마음에 들기 때문입니다. 


아날로그 이론과 반도체이론이 뒤섞여있는 초기 디지털 시대의 책들이 아직도 나의 책장 한켠을 점령하고 있으며, 


마루에는 진공관 앰프가 놓여있고 진공관 릴테이프 데크가 있으며 LP Player도 여전이 돌아가며 그 기계들이 아나로그에 가까운 정겨운 소릴 내기도 합니다. 

이 진공관오디오 기계로 음악이라도 한번 들으려면 귀찮은 동작을 많이 해야 합니다. 

그래서 컴퓨터로 간단히 선곡해서 듣곤 하지만 그래도 "대가야"라는 나의 진공관 앰프와 그 Set는 내게 아나로그식 음악을 들려주며 디지털기기가 전자기기를 대부분 점령했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만한 시대 이지만 청춘을 보낸 디지털화 전자기기와의 긴 인연보다 함께한 시간이 짧은 아날로그 시대의 저 진공관 앰프가 훨씬 더 내게는 귀한 물건입니다. 

나이가 들어서 저절로 아날로그 스타일이 되었다고 말하지 않는것은 적어도 초정밀 디지털이지만 모든 것을 커버하지는 몯하며 엉성하게 보일수도 있는 아나로그의 참을 오디오로 부터 알아 보게 되어서 입니다. 오디오에 국한해서 말한다면 좀더 트인 음폭으로 바람부는 소릴 들을수도 있다는 표현을 하면 맞을지 모르겠습니다.  


카드보드와 VR BOX 소감::OmnisLog

카드보드와  VR BOX 소감::OmnisLog



순전히 개인적인 느낌이니까 모든 사람이 다 같을 수는 없다는 것을 먼저 밝히며 사용 후기를 남기는 것이며 절대적 비교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원래 비싼것이 싼것보다 좋은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냥 종이 상자에 렌즈 두 개 끼워서 만든 것으로서 꼭 물놀이 할 때 쓰는 사각 수경처럼 생긴 VR기기인데 구글이 독창적으로 가상현실 체험용으로 보급한 것이다.

구글이 대단한 것은 엄청 저렴하게 보급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높이 사고 싶다.
구글 카드보드를 아들이 갖다 놓았는데 별 관심 없다가 가상 현실을 체험해 보고 싶은 마음에 4세대 VR 기계를 온라인으로 하나 샀다.

영화 아바타를 본 감동을 잊지 못해서 그런 느낌을 집에서도 체험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몇 가지 영상을 본 후에 관심 없었던 종이 VR기 구글 카드보드를 통해서 같은 걸 봤다.

웬걸 배달료가 아까워서 몇 개 더 사서 나눠줘도 아깝지 않을 만큼 저렴한 종이 상자 VR 기가 생각 밖으로 괜찮다는 걸 알았다.

오직 한가지 문제라면 미간 조절과 초점조절이 안 돼서 사람에 따라서는 전혀 가상 현실 체험을 하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구글 카드보드를 10개도 더 살 수 있는 금액으로 산 4세대 VR 기는 초점 조절과 미간 조절이 가능한 VR 기라는 것 외에는 같은 원리이다.

고급렌즈를 장착했다고 하지만 딸랑 렌즈 한개인 종이 상자에 붙인 것과 가격대비 만큼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비싼 제품은 초점 조절이 되어서 영상을 자기 시력에 딱 맞출 수 있고 눈동자의 미간 거리가 안맞는 사람에게 정확한 위치를 맞출 수 있게 만든 것은 영상을 제대로 볼 수 있도록 한 획기적인 장점이다.
그외에 이어폰이 된다거나 착용감이 좋다거나 등등 좋은 조건이 있지만 종이 상자나 비싼 VR 기나 화질 면에서는 별로 차이를 못 느낄 정도이다.

가상현실 체험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 저렴한 가격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의 고 퀄리티를 보여 줄 수 있게 고안된 창의성을 높이 평가 한다.

종이상자라서 내구성이 떨어진다는 게 흠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잘 구겨지거나 찢어지지는 않는다.비싼기계라고 해서 와 장관이다 !
경장 하네 감탄사가 나오지 않는 것은 내 개인적인 취향일지 모르지만 ,
아직은 사이드바이 사이드식 VR기기로 가상현실을 체험하는 데는 시작에 불과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더 발전된 기계가 업그레이드 되어서 출시되기를 기대한다.

화질은 스마트폰 디스플레이가 고 해상도이면 더 좋게 보인다.
그러니까 디스플레이 해상도 낮은 핸드폰이라면 모기장 패턴이 눈에 거슬릴 정도로 보인다.

개인적으로 어떤 분이 VR 기기를 한번 체험해 보고 싶다고 하면 시력이 정상이라면 종이상자 카드보드로 충분하다고 조언해 주고 싶다.
그런 후에 VR 화면이 맘에 들어서 편하게 오래 많이 보고 싶다면 그때 가서 비싼 VR기기를 사도 늦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동영상 으로 보는 거제도 가는길

동영상 으로 보는 거제도 가는길



블랙박스로 보는 거가대교 


부산에서 거제도를 가면서 블랙박스에 찍힌 거가대교 풍경을 발췌한 것입니다. 
먼저 이 영상은 최고 품질로 녹화하지 않은 것임으로 블랙박스의 성능을 판단하는 척도로 생각하지 말길 바랍니다.  


거가대교

거제도는 아름다운 섬이며 또한 부속도서도 많고 한려해상국립공원 지역으로서 아름다운 작은 섬들도 많습니다. 
대표적인 섬 여행코스로 부산에서는 거제도로 많이 가는 곳입니다. 
거제도에 직장을 두고 통근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가끔 여행 가는 사람들에게는 환상적인 섬입니다. 

가끔 거제도 섬 여행을 하지만 갈 때마다 새롭고 또 오고 싶은마음이 드는 곳입니다. 
거제도 홍보대사도 아니고 블랙박스 광고 하는 것도 아니지만, 거제도 여행을 하려면 제일 먼저 해저터널과 이 아름다운 거가대교를 통과하면서 멋진 관문을 지나는 것입니다. 

거제도를 방문하는 사람에게는 근사한 들머리입니다. 
아래는 유튜브에 올린 나의 블랙박스에 찍힌 거가대교를 지나는 영상입니다. 
거듭 밝히지만, 블랙박스 저장품질을 최하로 설정한 것임으로 화질을 보고 블랙박스 품질을 판단하지 말기 바랍니다.


,사진,동영상

2017년 1월 17일 화요일

용선대(觀龍寺 龍船臺)-관룡사 ::블로그 에쎄이

관룡사 용선대(觀龍寺 龍船臺)::블로그 에쎄이



석조여래좌상(昌寧 觀龍寺 龍船臺 石造如來坐像).
관룡사 용선대(觀龍寺 龍船臺) 

관룡산(觀龍山)주봉에서 아래쪽으로 내려오면 거대한 석봉이 있고 그위에 아득히 동쪽을 향해 바라보는 암봉에 높이 앉아있는 석조여래좌상(石造如來坐像)을 만나게 된다. 

관룡사(
觀龍寺)에서는 우측으로 약간 오르막을 올라서 관룡산 주봉을 오르거나 화왕산 방향으로 가는 갈림길옆의 위험한 암봉위에 어떻게 안치 했는지 도저히 이해할수 없는 위치에 석굴암의 여래석상을 옮겨온것으로 착각하게 하는 좌상이 온화한 모습으로 암봉위에 앉아 있다.

지금은 편리하게 나무계단을 만들어서 노약자라도 쉽게 참배할수 있도록 잘 배려하고 있다.
석상의 모습은 석가모니가 큰 깨달음을 얻는 순간을 상징하는 촉지인(觸地印) 또는 지지인(指地印)이라고 하는 모습인데 석가모니가 온갖악귀를 물리치고 지신(地神)을 불러 가르키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이라고 하는 모습으로 조성되어 있다.오른손은 내려서 손가락으로 아래(땅)를 가리키고 왼손은 선정인의 모습을 한 자세이다.

약한 붉은 빛이 도는 연화자대위에 밝은 하얀 화강암으로 조성된 아름다운 이 여래좌상(如來坐像)은 통일신라 시대(統一新羅時代)가 끝난후인 남북국 시대(南北國時代)에 조성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신라의 석조 여래 좌상이며 우리나라 보물 제295호로 지정되어 있는 우수한 문화 유산이다.

**남북국 시대(南北國時代):698년 발해가 건국해서 신라와 공존하다 926년 발해가망하고 935년 신라가 멸망할때까지 삼국시대이후 후삼국시대 이전의 기간을 말한다.
**

불자의 눈으로 보는 이 여래좌상은 여느 불상과는 그 느낌이 사못 다르다.
온화하고 안정되며 화려하지 않고 수수한 인상이며 특히 암봉위에서 동쪽을 향해 우뚝 솟아오른 모습으로 위용을 자랑하거나 근엄하지 않고 소박하면서 안심을 주는 그런 느낌을 받는다.

아래는 석양이 곧 지는 시간에 찍은 사진입니다.
관룡사 용선대(觀龍寺 龍船臺)

관룡사 용선대(觀龍寺 龍船臺)


구월산-윤산(輪山 318m) 산행기

윤산(輪山 318m)구월산  등산안내

윤산(輪山)은 그리 큰산은 아니지만 부산 북부지역의 좋은 위치에 있는 산으로서 회동수원지를 내려다 보는 위치까지 뻗어 있어 등산이라기 보다는 산책로 수준으로 잘 정비된 임도가 있어서 걷기 좋은 곳입니다.

간단히 윤산만 오를수도 있지만 좀더 좋은 코스로 걷기를 원한다면 아래 지도처럼 오륜대 본동에서 땅뫼산 황토길을 산책한 후에 회동수원지 갯벌에 세워논 나무데크길을 따라서 호숫가 정자까지 가면서 경관을감상하고 편백숲을 지나서 꿀벌농원앞을 지나 최종적으로는 부곡동 부곡암 앞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추천 하고 싶습니다.

본격적으로 윤산을 오르면 잡목림과 솔숲으로 이어지지만 회동수원지 길은 편백숲으로 웰빙산책길로 각광받는 곳이다.
시간은 보통사람이 걸으면 약 2시간30분정도의 코스이지만 중간에 식사를 한다거나 경치를 감상하는등 취미 활동을 한다면 좀더 소요될수 있는 적당한 코스입니다.

대중교통을 감안해서 도시철도 장전역을 출발하는 5번버스로 오륜동 종점으가서 출발해서 도심으로 돌아온다면 귀가하는 교통이 좀더 쉽다는 생각으로 오륜동에서 출발하지만 반대로 부곡동 부산사대부속고등학앞을 지나 부곡암 입구에서 오륜대까지 가는 코스도 좋습니다.
다만 아침시간에 땅뫼산 황토산책길을 맨발로 걷고 싶다면 본인이 추천하는 코스가 좋을것입니다.

그리고 이 코스로 걸으면 부곡암 못미처서 강력 에어분사기가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먼지나 흙을 털고 내려 올수있습니다.

구월산-윤산(輪山 318m)  산행기

세계최강 폭격기 B-2 스피릿(B-2 Spirit)

세계최강 폭격기 B-2 스피릿(B-2 Spirit):



세계최강 다목적(전략/전술)폭격기.B-2 스피릿(B-2 Spirit) 알아보기.


전세계20(21?)대 밖에 없으며 더이상 생산하지않는 강력한 무장탑재와 가장 비싼 폭격기 B-2 스피릿(B-2 Spirit)을 알아 본다.
왼만한 나라에는 이 B-2 스피릿(B-2 Spirit)한두대만 날아가면 초토화 시켜버릴만큼 가공할 무력을 탐재하고 몸체는 자기생존을 극대화한 최첨단 방호및 회피기술이 적용되어 음향회피,적외선회피,가시회피,레이더회피등 하늘에서 투명망토를 입은것처럼 보이지 않는 유령같은 폭격기이다.

B-2 는 일반적 스텔스기술보다 한층 업그레이드된 감시회피 성능을 가지고 있다.
뛰어난 스텔스 성능은 적의 방공망을 침투할 때 유령처럼 초저공 또는 고고도로 다가 갈 수 있으며 재래식 무기와 핵무기를 함께 운용하며 특히 적의 전략적 목표를 타격하는 데 뛰어난 성능을 발휘하며 아직은 기 기종과 성능기능이 비슷한 폭격기는 없는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긴 항속거리를 자랑하며 어마어마한 폭탄 장착량에도 불구하고 스텔스 성능을 유지하고 적이 어떻게 타격당하는지도 모르게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폭격기이다.
한마디로 괴물같은 다목적 유령폭격기로 볼 수 있다.

여기에 쓴 내용은 일반인이 재미로 알아보는 내용이며 비전문인으로서 온라인에서 검색으로 찾아서 정리 한 것입니다.혹시라도 문제가 되는 내용이 있다면 지적해 주시면 검토 수정 도는 삭제 하겠습니다.

B-2 스피릿(B-2 Spirit)

이미지출처: https://ko.wikipedia.org/wiki/B-2_스피릿

B-2 스피릿(B-2 Spirit)의 무장 대강

전체폭장량 무게: 약 18t(40,000 lb).
2개의 스텔스기능 회전식 발사대(Rotary launcher assembly) 내부무장창.

폭탄 적재대(Bomb rack assembly)에서 회전식 발사대로 2000lb급 폭탄 총 16발.
종류: Mk-84, Mk-84,JDAM, JSOW 등과 8발의 5000lb급 폭탄 장착
종류: GBU-37과 
핵무장(핵폭탄):16발의 B61,B83.

개량된 폭탄 적재대:스마트 폭탄 적재대(Smart bomb rack assembly).
80발의 500lb급 Mk-82및 JDAM, 36발의 1000lb급 CBU-87, CBU-89, CBU-97이 장착.
AGM-129 ACM및 16발의 JASSM, 2발의 MOP 등


B-2 스피릿(B-2 Spirit)의 스텔스기능

B-2 는 적의 식별장치를 회피하고 유령처럼 적의 방공망을 통과하고 깊숙히 침투하고 적 전력 핵심 시설을 어마어마한 무력으로 초토화시킨다.
B-2 스피릿(B-2 Spirit)에 적용된 스텔스 기술은 세계최고라고 하며 피 탐지성을 극히 감소시킴으로서 적감시장치에 노출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감시 회피 성능은 레이더는 물론이고 적외선탐지, 음향탐지, 전자기탐지,시각탐지까지 대응한 설계를 통해서 피탐지성이 지극히 감소되었다.

기술적인 자료를 토대로 B-2의 RCS는 대략 0.0001~0.1m 정도로 추정되고 있으며 이런 작은 RCS달성을 위해 지금의 꼬리날개도 없는 시각적인 디자인이 탄생한 것이다.
특히 엔진 공기흡입구와 노즐의 위치도 동체의 상부 등에 위치해서 지상방향에서 엔진 배기를 볼 가능성이 없다.

전파 흡수도료와 함께 동체곡선및 엔진위치등의 물리적인 설계와 적외선탐지나 열성 탐지를 회피하기 위해 엔진의 자열 냉각장치까지 가동된다.
특히 고 고고도 비행때 발생하는 비행운은 시각탐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비행운이 발생하지 않도록하며 경보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하 B-2 스피릿(B-2 Spirit)스펙(제원) B-2A Block 30.
출처: https://ko.wikipedia.org/wiki/B-2_스피릿,

B-2 스피릿(B-2 Spirit) 일반 제원

승무원: 2명
길이: 21.0 m (69 ft)
날개폭: 52.4 m (172 ft)
높이: 5.18 m (17 ft)
날개 면적: 478 m²(5,140 ft²)
비적재시 중량: 71,700 kg (158,000 lb)
empty weight alt: 71,700 kg
비적재시 중량: 152,200 kg (336,500 lb)
최대 이륙 중량: 170,600 kg (376,000 lb)
연료 탑재량: 75,750 kg (167,000 lb)
엔진: 제너럴 일렉트릭 F118-GE-100 터보팬 엔진 X 4기
추력: 77 kN (17,300 lbf)
가격: 7억3,700만 달러(1997년)


B-2 스피릿(B-2 Spirit) 성능제원

최대 속도: Mach 0.95 (1,010 km/h, 550 knots, 630 mph)(40,000 ft 상공 및 해수면 저공비행)
순항 속도: Mach 0.85 (900 km/h, 487 knots, 560 mph)(40,000 ft 상공)
항속거리: 11,100 km (6,000 nmi, 6,900 mi)
최대 고도: 15,200 m (50,000 ft)
날개 부하: 329 kg/m² (67.3 lb/ft²)
추중비: 0.205


B-2 스피릿(B-2 Spirit)폭탄 투하 연상그림B-2 스피릿(B-2 Spirit)폭탄 투하 연상그림

B-2 스피릿(B-2 Spirit) 무장제원
2개 내부무장창에 18톤 무장
80× 500 lb 급 폭탄 (Mk-82): 스마트 폭탄 장착대에 장착
36× 750 lb 급 CBU: 스마트 폭탄 장착대에 장착
16× 2000 lb 폭탄 (Mk-84, JDAM-84, JDAM-109): 기존 회전식 장착대에 장착
16× B61 또는 B83 핵폭탄: 기존 회전식 장착대에 장착
핵폭탄
핵폭탄



Busan Night view -멋진 부산야경

부산의 혈관 교통흐름을 보는 야경입니다.
Blood vessel of Busan. Back ground music : Les Toreadors from Carmen (by Bizet)

BC,AD 서기(西紀),세기::블로그 에쎄이

BC,AD,서기(西紀) 세기 ::블로그 에쎄이

BC,AD,서기(西紀),세기

서기(西紀)는 서력기원(西曆紀元)의 약어로서 예수의 탄생을 기점으로 이를 기원(紀元)으로 삼고 그해를 원녕으로 계산하는 서양의 기독교 문화권에서 사용해 온 책력 기록 방식이다.

현재는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고 있으며 그레고리력의 1년을 기원으로 하는 시작하는 해로 삼고 있다.

기독교 문화권에서 사용을 시작한 것이기 때문에 그 약어도 영어로 Anno Domini (주의 해(年))를 첫자를 취해서 AD로 표기한다.
즉 예수가 탄생한 해를 기원으로 하여 이후를 AD 이전을 Before Christ (예수 이전)줄여서 BC로 표기 사용한다.

기원후 AD(Anno Domini -주의 해(年))나 기원전 BC(Before Christ-예수 이전에)이 처음에는 특정 종교의 책력이지만 전세계가 역사 연대를 표시 할 때 공통으로 사용 하면서 이제는 특정 종교적인 책력으로 인식 하기 보다는 보편적인 책력으로 인식 사용 되고 있기 때문에 굳이 주의 해 라는 식으로 생각하지는 않으며 보편적인 서기 즉 기원후(기원 원년 이후)로 사용하고 있다.

사전적 유의어로서  서력기원, 에이디, 주후가 있다.
그리고 예수가 태어난 해를 기점으로 한다는 내용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예수가 태어난 시기가 역사적으로 이 때와 혼선이 초래 될수 도 있음으로 종교적인 날자로 보지 않고 보편적 연호의 기록 방법으로 보는 것이 타당 하다고 생각한다.

아예 BC나 AD를 대체할 연호를 고안 하려는 시도와 타 종교의 연호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글로벌 역사 시기를 공통적으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전 세계가 이미 널리 사용 중인 BC나 AD를 사용 하는것이 많은 융통성 면에서 득이 되기 때문에 우리도 우리 고유의 연호 보다는 서력기원을 사용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미 특정 종교와 밀접한 연호이기는 하지만 이제는 종교와 상관없는 단순한 연대표기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달리 생각하지 않는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서기를 기준으로 100년씩 나누어 구분하는 세기(century) 또한 보편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역사시기 표현방법으로서 이미 통일된 표기로서 고착 되어 있기 때문에 대체를 논의하는것은 불필요 하다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웃 일본처럼 자기나라 고유의 연호와 병행 사용하는 나라도 있지만 이를 그나라의 정체성과 연관 시킬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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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AD,서기(西紀),세기

역사를 공부 할 때 자주 쓰지만 가끔은 헷갈리기도 하는 단순한 약칭을 알아봅니다.

세기(century)는 그리스도 탄생의 해를 원년으로 100년을 1기로 하여 연대를 나누어 세는것이다.
다만 1세기는 원년 즉 AD1년부터 시작해야 하며 AD100년 까지를 말하는데 이후 계속해서 100년 단위로 101년 201년 부터 2세기 3세기 이런식으로 부른다.

다만 AD1세기 AD2세기 하지 않고 그냥 1세기 2세기 라고 한다.

서력기원 이전 즉 예수가 태어나기이전의 해는 BC로 표기하며 BC100년부터 BC1년까지가 BC1세기가 되지요.

BC2세기는 BC200년부터BC 101년까지이고요.

원년을 기준으로 과거로 멀어지는 마이너스는 BC이고 현재에 가까워지는 플러스는 AD이겠습니다.

BC2400년부터 BC2301년까지 BC24세기네요.
BC196년은 BC2세기 이겠습니다.

AD 2세기는 그냥 2세기 라고 하며 101년부터 200년까지입니다.
다만 역사에서 인식을 편하게 하기위해서 AD라는 전치표시를 할 필요가 있기도 합니다.

AD1499년은 AD15세기이며 그냥 15세기라고 표시하며 년대로는  AD1401년부터 AD1500년까지이네요.


,,역사


2017년 1월 15일 일요일

가락국(駕洛國)의 황세바위

가락국(駕洛國)의 황세바위



봉황대에서 만난 황세바위의 슬픈이야기

김해시의 역사유물이 조밀하게 남아있는 중앙부근에 있는 봉황대에서 황세바위를 본다.
황세바위 이야기는 슬픈 내용이지만 함께자란 소년들의 순수한 모습들을 연상케하는 바위이다.

아래 사진으로 보는 황세바위는 가락국 제9대 겸지왕(숙왕)때 황정승의 아들 이름이 황세인데 황세가 놀던 바위라고 해서 황세바위로 불린다. 

당시에 황정승과 출정승이 있었는데 둘은 절친해서 아들을 낳으 의형제로 살게하고 아들딸이 나면 배필로 살게 하자는 약속을 한다.

이후 황정승은 아들을 낳고 출정승은 딸을 낳는데 갑자기 출정승의 가세가 기울어 몰락하게 되어 배필로 보내지 않으려고 아들이라고 속여서 아들처럼 키운다.

황세와 여의는 형제처럼 함께 자라는데 사내 아이들이 잘 하는 오줌멀리 누기를 당시에 황세와 여의도 이 바위위에서 누가 더 멀리 오줌을 누는지 시합을 한다.

여의는 기지를 발휘해서 삼대 (경상도방언으로 제릅대)를 끼워서 사내처럼 오줌을 멀리 눈
이야기가 전해오는 바위이다.
둘은 점점 자라서 여의가 여인의 형태를 때쯤 황세가 이상이 여기고 거북내(해반천)에서 멱을 감자고 한다.
여의는 더이상 속일 수가 없어서 여자임을 밝히고 둘은 결혼하게 된다.

그후 황세는 신라와의 전쟁에 나가서 큰 공을 세우게 되어 왕명으로 유민공주와 결혼하게 된다.
이후 여의는 크게 상심하여 황세를 그리워하다 죽게된다.
황세 또한 상심하여 병을 얻어 같은해에 세상을 떠난다.
유민공주 또한 상심해서 유민산(임호산)의 사찰로 출가하여 여승으로 여생을 보낸다.

지금도 나즈막한 구릉지 봉황대에는 행복했던 황세와 여의가 소년으로 놀던 이 바위는 천년도 더 지난 지금도 사람들에게 입에서 입으로 애틋한 마음을 전해주고 있다.

봉황대 한켠에는 여의의 넋을 기리는 여의각이 있어 마음을 짠하게 한다.

가락국(駕洛國)황세바위



가락국 대략 :
김해는 그옛날 금관가야(金官伽倻)또는 본가야(本伽倻)의 지역으로서 42년부터 532년까지 존재했던 한반도 남쪽에서 신라에게 멸망하기 전 까지 가락국(駕洛國)이라는 국명으로 강력한 국각이었다.

가락국(駕洛國)은 대략 1세기 중기에서 4세기 말까지 여러가야로 뭉친 가야연맹체의 맹주였다. 4세기 말 왜와 연합하여 신라를 공격하다가 400년에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신라를 도와서 공격함으로 종발성 등 낙동강의 동쪽과 북쪽 지역 현재의 부산, 양산, 밀양에 대한 지배력을 잃어버리고 반파국과 안라국에 연맹체의 맹주 자리를 내어 준다.
많이 사용되고 있는 금관가야(金官伽倻)라는 국명은 역사적으러 한참 뒤인 고려의 왕건이 붙인 이름이다.

사서에서는 구야국(狗邪國),구야한국(狗邪韓國)으로 표시되고 있는데 狗자의 상고음(上古音)이 '가이'라고 하며 狗邪는 '가이야'나 혹은 '가야'로 발음되기 때문에 가야국이라고 하는것으로 얄려지고 있다.

시대가 바뀌면서 발음이 조금씩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가야(伽倻, 加耶, 伽耶), 가락(駕洛, 加洛), 가라(加羅, 伽羅, 迦羅), 가량(加良) 등의 한자로 표기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가야의 다른 이름인 가라(加羅, 伽羅, 迦羅)는 외국을 지칭하는 일본어 'から(가라)'로 전해진다.
일본 서기에서는 '가락국은 수나라(須那羅)'라고 쓰고 있는데 우리말로는 '쇠나라'로 읽히는데 가야국의 풍부한 철기문화에서 당시 왜(倭)와 교역할때  쇠(鐵), 즉 철기나라로 말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눈물나는 도래재 일흔 일곱 굽이

눈물나는 일흔 일곱 굽이 도래재 이야기 



도래재는 밀양시 산내면과 단장면을 오가는 고갯길로서 천왕산과 영산 사이로 넘는 높은 재입니다.

예로부터 고개가 너무나 높고 기상상태가 수시로 변덕이 심해서 가다가 위험하여 돌아오는 일이 많아서 붙여진 것이며 다시 돌아오는 재라는 뜻으로 도래재입니다.

이번 가을 단풍구경하며 표충사에서 얼음골로 얼음골에서 표충사로 이 고갯길을 요긴하게 이용하고 남기는 글이며,

이 고개에 서려 있는 이야기를 함께 하렵니다.

아주 오래된 옛적에 단장면에 사는 한 농부의 딸이 산내면 시례골의 화전민 아들에게 시집을 갑니다.

굽이굽이 일흔일곱 번을 돌아서 간 시집은 찢어지게 가난해서 조상 모시고 시부모 공양하고 살기가 너무나 힘들었답니다.

몇 년을 버티고 버텨도 도저히 살 수가 없어서 어린 것은 등에 업고 고갯마루에서 부여잡는 신랑과 헤여저 친정으로 돌아왔답니다.
눈물로 헤어진 이 고갯마루를 뒤로하고 친정으로 돌아왔지만, 날이 갈수록 걱정되는 시부모와 그리운 남편이 불쌍하고 안타까워 견딜 수가 없어서 좀 형편이 나은 친정집의 따뜻한 밥도 목이 매여 넘어가지도 않게 됩니다.

어느 날 머리에 일 만큼 손에 들 만큼 친정에서 얻은 양식과 곡식을 이고 들고 길을 나섰답니다.
집을 나와 비탈길을 오르고 올라서 겨우 겨우 고갯마루에 도착할 때는 이미 큰 산의 해는 기울고 있었습니다.

이때 어디선가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가 있었는데 , 못 잊어 울며 부르는 남편이 고개에 와 있었던 것입니다.
아내가 떠난 후로 어느날 돌아 오더라도 위험하고 무서운 이 고개에서 다시 돌아가지 않도록 기다린 것입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해 허기진 남편은 기약도 없이 이 고갯마루에 와서 언젠간 아내가 돌아올 것을 믿고 날마다 기다렸던 것이었습니다.
재회한 부부는 한없이 울었고 어두운 산길을 사랑으로 길을 밝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친정에서 가져온 씨앗을 뿌리고 화전을 더욱 많이 일구며 '아무리 시집살이가 고달퍼도 너의 일생은 그 가문에서 끝을 보라.'고 하는 친정 부모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다시는 돌아가지 않고 참고 견디며 열심히 노력해서 넉넉한 농부가 되어 많은 후손을 남기는 해피엔딩 이야기 입니다...

그들의 후손은 이후 크게 번성해서 산내면의 시례골에 학문을 숭상하는 가문으로 내려오는데 ,시례골이라는 이름은 이 후손들이 시와 예를 숭상해서 모여사는 골짜기 마을이라는 뜻으로 시(詩)례(禮)가 있는 마을이라고 시례골이라고 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시례골 이야기를 생각하며  밀양사람 이재금(1941~97) 시인이 남긴 도래재라는 시를 읽으면 더욱 실감이 납니다.


도래재 - 이재금
 
언양땅을 넘어가면 석남고개
밀양땅을 넘어오면 도래재고개
일흔일곱 굽이굽이 소쩍새 울어
실안개 피는 자락 눈물 맺힌다

돌아서서 가신님 돌아오는 고개


지금은 자전거 매니어들의 라이딩 명소이며 자동차 초보딱지 떼는 도로연수 코스이기도 한 도래재를 왕복하며 표충사를 참배하고 얼음골 케이블카를 타고 천왕산을 오른후 하산해서 당일치기 부산까지 돌아온 이 놀라운 세상을 살면서,

좋아진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이 지역의 교통상황 과 발전된 세상을 살 수있는 나를 생각하며 삶을 되돌아 볼 수 있는 하나의 정서적인 지역으로서 고맙게 생각하는 곳입니다.

돌아오는 도래재 일흔 일곱 굽이


도래재로도래재로
도래재로 도래재 고갯길 

영남알프스의 산군들 중에서 약간 벗어난 날개 산인 명산 천왕산과 영산 사이의 유명한 고개이며 도래재 모습의 사진을 보면 현대기술로 닦은 고개도 이 정도인데 옛날 산길이 어느정도 였는지 짐작하기도 힘들것입니다.

도래재는 밀양시 산내면 남명리 내촌 일명 가래나무골에서 단장면 구천리 삼거리로 이어지는 전체 도로중에서 고갯길을 말합니다.


그래서 도래재라는 밀양사람 이재금씨의 시가 잘 알려저 있으며 첨부 한 것입니다.

현재 산내면 남명리와 단장면 삼거리로 통하는 도로가 확장·포장 되었고 도래재 도로가 잘 정비되어서 자동차로 드라이빙하기가 짜릿하고 좋습니다.

전국의 자전거 동호인들에게는 꽤 알려진 라이딩코스이기도 합니다.
겨울철이나 악천후 때에는 자동차운전도 유의해야 할 것이며 가끔 통제되기도 하는 도로입니다.